야반도주
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 님, 기뻐하소서. 그 눈이 다시 나를 향해요. 당신이 이 구천에 뿌린 어느 생명은 늙어 제 명이 다할 때까지 무엇 하나 이뤄낸 게 없었으니, 그런 구닥다리에게 걸맞은 최후의 사명쯤이야 짊어질 법도 하지요. 마리아 님, 내리막길을 모르는 감정을 당신은 헤아려 주시려나요. 당신이 나를 점지하신 곳에는 희망이 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좌절조차 쓸쓸해했답니다. 천주의 성모 마리아 님,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. 이 몹쓸 몸뚱이는 당신의 평안을 위해 감히 인생을 내놓습니다. 돌아가거든 반겨주시려나요. 이렇게 앗아가시면 그제야 마땅하시려나요, 유복하시려나요, 당신은 헤아려 주시려나요⋯. 야반도주 그대 기나긴 밤을 지나서 본 적 있는가 겨울이 오리. 케케묵은 시골 방촌에서도 축제는 열렸다..
2023.10.30